Wednesday, August 4, 2010

노래여, 마지막 노래여

요즘 말이 아니다 – 월드컵 축구 때문에 매일 힘도 좋게 새벽 4시에 일어나 시청하느라 수면부족에, 내가 찍어둔 팀이 지면 어쩌나 하는 하루종일 은근한 압박때문에 생긴 신경쇠약에다, 보스 몰래 살금살금 경기를 봐야하는 처절한 상황때문에 생긴 조울증, 울렁증 때문에 심신이 말도 못하게 고단하다. 그래도 발놀림 하나하나 유쾌한 도전을 펼쳐나가는 선수들을 보는것이나, 시원한 골하나 빵 터져줘서 선수들의 환희를 몸소 볼 수 있다는것 자체는 새벽에 일어나도 좋을만큼 재미나다. 지난주말 한국이 그리스를 꺾고 원정 첫승을 올렸을때는 정말이지 가득이나 커다란 목청에 성능좋은 화통을 두개달아놓고 소리를 왁왁 질러댔고, 또 카메룬 대 덴마크저는 손에 땀이 마를새 없도록 흥미진진한 감흥의 그자체 였다. 

인생 어느곳에서나 일희일비의 롤러코스터가 있게마련이니, 월드컵 시청도 예외는 없다. 승리의 희열이나 좋은 플레이를 봤을때의 짜릿함의 반대편에는 항상 패배의 먹구름과 역부족이라는 참 무기력하고 인정하기 싫은 현실이 드리워져 있었다. 

오늘 아침 대한민국 경기를 지켜보듯 유심히 북한과 포르투갈 경기를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혹시 이길 수도 있지 않을까? 정대세와 지윤남이 공격의 굵은선을 그어주면 이변은 그렇게 멀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기대를 하며, 내속에는 괜히 평소에는 생각못했던 동족의 핏줄이 당기고 있었는지도. 신문 한자, 뉴스 한토막이라도 보면 저런 저런 나쁜놈들 하며 북한 체제를 대놓고 욕하고, 국제사회에 도움은 커녕 개망신 투성이라고 확신했던 북한, 그 북한을 향하여 나는 만감이 뒤섞인 응원을 조용히 보내고 있었다.

결과는 알다시피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 칠대빵. 아니나 다를까, 신문기사 덧글에는 상반된 의견들을 사람들은 잘도 뱉어낸다. 강경우파들은 “핵개발하는데 축구에 신경쓸 시간이 있겠어?” 내지는 “망신한번 톡톡히 시켰다?” 라며 북한의 경기를 최하의 졸전으로 폄하하고 북한을 할 수 없는 문제아로 다시한번 콕 찍어 버렸다. 그에 걸맞게 진보신파들은, “북한 잘싸웠다, 강팀에 주눅들지 않고 첫 국제무대에 성공적 데뷔였다!” 또는 “북한선수들에게 질 좋은 신발을 보내자!” 라는 북한선수들을 옹호하는 글로 맡받아쳤다. 

평소같았으면 가재미눈을 뜨고, “저런 좌파놈들, 우리가 당한건 어떻게 잊어버리고 북한이라는 개망난이를 감쌀 수가있어. 7대0이 아니라 20대0으로 지지 않은게 분하다..” 라며 부르르 떨었을텐데, 왠지 오늘은…한성깔 하던 그 폭풍이 잠잠하다. 그 대신, 그 대신, 좀더 잘해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스며든다. 비는 절절오는데 그래도 미끄러지고 고꾸라지고 끝까지 90분동안 최선을 다해야만 했던 그들의 투지에 괜히 맘이 시큼털털 해진다. 그래도 같은 동포인데 라는 연대감이 삐직삐직 거린다. 한국과 북한이 16강에 같이 올라갔으면 하는, 이제는 부질없는 헛꿈만 꾼다.

나같은 나이롱 한국인임에도 애증의 관계를 성립할 수 밖에없는 나라 북한. 이제껏 입으로 머릿속으로 그려온 북한에 대한 우지끈 번쩍거리는 증오심의 번개가 오늘하루만은 구름뒤로 가리워진다. 공산주의와 독재주의가 드러낸 60년동안의 마각은 경멸하지만, 운명으로 그안에 있어야하는 오늘 우리의 북한 선수들에는 정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은것이다.

우리에거 잘 알려진 재일동포면서 한국국적을 가진 정대세 선수는 북한 국가가 울려퍼지자 그동안 삭혀뒀던 감정을 구구절절한 눈물로 보여줬다. 그리고 국가가 끝나자 모든 선수들은 짧지만 의미심장한 승전가를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국적, 이념, 사상을 넘어선 모두들도 그들이 잘 싸워주기를 바라는 승전가를 부르고 있었다. 솔직히 승전가인지, 김정일 찬양가인지, 인민가인지 아리송하다. 

이제 16강 진출에는 별 의미가 없는 코트디부와르와의 경기, 북한선수들, 그들이 부르는 국가, 그들이 부르는 승전가가 마지막일지라도 결코 마지막이 아니라는 것을 잘알고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마지막이 아닌것을 알기에, 그 얄궃은 마지막의 노래를 아주 열심히 목 터져라 부르고, 펄펄 뛰고 날아 그래도 좋은 경기를 펼쳐줬으면. 그들을 옭아주고 감싸주는 노래가 거기서 멈추지 않기를.

노래여, 마지막 노래여!

아쉬운 수증기 되기전에

드디어 제대로 무르익은 곡 하나를 찾은듯 하다. 좋은 곡, 좋은 작품 하날 찾으면 귀가 닳고 눈이 빠지도록 보는 맹목형 인지라 그 기쁨은 말할 수 없이 크다. 홍수처럼 쏟아지는 대중가요들 속에, 도도한 내 마음 안에 농염한 자태를 드러낸 그곡. 다름아닌 인디 락의 풍운아라 할 수 있는 Broken Bells 의 Vaporize 란 곡.

진즉에 예술과의 발로를 통해 즈려밟은 인생의 길을 되돌아 보는 훈련은 되있지 않은줄 알았었다. 괜히 먼산을 보며 생각에 잠기다 퍼특 생각이 들거나, 괜시리 열심히 일에 몰두할때 기상천외한, 참으로 덧없는 삶이라는 생각들을 머릿속에 꾸겨넣곤 하지만, 고상하게 질좋은 음악을 들으며, 혹은 내공이 녹아있는 그림 한폭, 조각 한 점을 보며 삶의 거울을 삼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고 치는게 좋다. 워낙 삼류를 밝히는 지라, 오히려 무궁무진한 예술의 잔잔한 힘을 깡그리 무시하고, 접하기 쉬운 드라마 라던지, 남들이 속닥거리는 여담을 통해 괜시리 맘이 흔들리고, 나도 저렇게 살아야지, 이렇게 살면 경치지 하며 시건방 스레 다짐을 하곤한다. 

근데 이런 인디락 중에서도 점잖은 축에 드는 Vaporize 를 들으며 참 며칠내 속사포같이 많고 많은 생각의 퍼즐을 짜맞추고 있다. 생각의 퍼즐이기 보단 으례 요즘에 헤엄쳤던 망각의 강을 벗어나 감사하게도 이성의 굴레에 바야흐로 들어선 것일지도. 

이 곡을 쓴 두 친구들도 그들답게 가득이나 사람을 취하게 만드는 곡에 묘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가사를 갖다 붙였는데, 이 얘기 저얘기 할것없이 내가 정의의 요는 바로 – 이 징글징글한 세상속에서도 똑바로 살아라, 그런 얘기인 듯 했다. 이 복잡스런 21세기의 격정 속에서 바르고 바른것을 좇아가라는 선견지명 이었다. 눈감으면 코도 베어가는 이 각박한 현대의 짜맞춤에 순수의 시대를 창조하라는 다독거림 이었다. 차갑고 자로 잰듯한, 항상 계획과 미래의 종이 쪼가리가 나부끼는 결코 푸르르지만은 않은 하늘에서 두리뭉실 구름을 찾고, 둥근달 같은 푸근함을 찾고, 비행기가 그리고 간 곡선의 관대함을 찾으라는 외침이었다.

그 밖에도, 나에게는 “까불지마 짜샤!” 하며, 아직 훈련이 더 필요하다고, 결코 무르익으려면 시간이 걸린다고, 인생의 성찰은 이 생이 다하도록 끝나지 않는다는 경종을 울리는, 뱃속까지 뜨듯한 그것이 꾸역거리는 가르침 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난 정말 인간으로서의 삶을 완성시키지 못한채, 곡의 제목처럼 수증기로 변할지도…

오랜만에 그냥 흥얼 거리는 수준을 훨씬 넘어선 양질의 곡을 찾아서 괜히 한 건 한듯 기분 째지고, 오후의 무료함을 이 곡과 함께 당분간 같이 갈 수 있어서 안심이고, 4분 남짓의 인디락의 소용돌이 속에서 큰 가르침을 낚은듯 하여 마음이 캥기고, 하지만 이번 주말 먹을 밥값은 한듯해, 내 자신의 인성교육에 조금은 일조를 한듯해 뿌듯하다.

The Coming of Age (finally...)

The Coming of Age (finally…)

So for those of you who are a little peckish about what I write, I write mostly about aging – and how “not bad” it is after all. What’s new? Here I go again as I mope (but this time I am moving on I think…)

A couple days ago, I found a great teacher, not in the great masses of brilliant engineers in the Silicon Valley or the wisdom-filled words of the Bible, but in a mere treadmill. Yes, in a treadmill! Never discount your gym apparatuses as those that will merely (?) re-shape your bodies and strengthen your physical health, it can do a world for your mental health – for me specifically, it helped me realize that I’ve been in denial for about good two months and am finally ready to walk the line as a proud (with slightly sagging facial muscles) thirty-year old.

Back in January when I was on the cusp of turning the monumental three-zero, I kept assuring myself that the world would not come tumbling down or that I’d see a sudden change in the state of my being where I’d need psychological counseling and regular diamond peels. 

Well, neither of those happened when I finally did turn 30, and well over two months into my middleage-hood (I am going to slaughter whoever defined the middle-age as with beginning with age 30), I still seem to believe in the forever young thing. I do what I do with the usual plan of attack – do it thoroughly, do it well, and do it with a touch of youthful exuberance and unbridled enthusiasm. And for sure, that doesn’t change even as a middle-aged man.

But apparently, my plan to take it ever so coolly and calmly of being a thirty-something didn’t work out so well. I found that out through my own realization on the treadmill. Every time you get on the treadmill, it asks for your desired course, desired heart rate, current weight, and…and…your age. Quite unconsciously, I’ve been punching in a stark two and a stark nine so that the machine remembered my age. The problem was, I’ve been doing the same routine even after January 23 of this year – my 30th. Truthfully though, I did it without thinking too much, I had for once any doubt (until a couple days ago) that I was not 29, not 30. I did finally come to a realization that I’ve been cheating myself and the machine. The poor machine thought all along that I was still a youthful 29 year-old, not a thirty-something and it had to work extra hard to make up for that lying of age.

Thank God, because I did finally punch in the three and the zero a couple days ago on the same treadmill that I go to at the gym – finally coming to my consciousness and finally coming to my senses. I don’t know why, but I felt like I was finally salvaging myself from the tail-end of my 20s and finally moving on. And of course, I was definitely salvaging the machine because now it knows that I am what I punch in to be. That run as a real 30 year-old went very smoothly, by the way.

I would like to express my gratitude to the very treadmill at the Google gym who has weathered my deceitfulness and unconsciousness for well over 60 days but kept her (I know it’s a her) patience and kept my focus on losing excess body fat off of me. 

The coming of age has been completed, mad props to the machine once again.

운명을 거슬러 - 달팽이 처럼

지난 연말, 나의 저녁 스케쥴을 깔끔하게(?) 평정시켜 주었던 각종 망년회, 동창회, 발표회, 친목회 등등은 새로운 해에 나에게 “몸무게 10파운드 감량” 이라는 녹록치 않은 숙제를 갖다 안겨 주었다. 평소에 비교적 신념을 가지고 운동은 해왔지만, 지난 12월이 들어서는 왠지 비도 많이오고 아침에 일찍 일어날 수있는 여건 (지난 밤의 과음…ㅋㅋㅋ)이 안되었기 때문에, 베짱 두둑하게 그냥 운동을 뛰어먹기로 했었다. 거기다가 거의 매일밤 일어나는 식사자리 술자리는 가득이나 좋은 나의 풍채를 맘껏 가로 퍼지게 도와주었다.

하여간 새해에 들어서는 내가 자초한, 내가 스스로 더덕더덕 갗다 붙인 이 공포의 10파운드를 빼고 말겠소이다 하고 공포를 했다. 그리고 다시 규칙적인 운동모드로 돌입했다. 또 하늘이 도우셨는지(?), 얼마전 친구의 꼬임에 빠져 7월에 열리는 마라톤에 참가키로 덜커덕 예쓰를 해버려서, 운동을 해 24마일 이라는 장거리를 뛸 수 있는 체력을 만들지 않으면 안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번주에도 여느 주와 마찬가지로 - 역기도 들고, 요가도 하고, 러닝머신에서 뛰기도 하고 하며 - 그럭저럭 보람된 한주를, 적어도 건강한 몸을 다시찾기 위해 일조가 된 한주를 보냈다. 그리고 왠일인지 오늘아침 장장 11마일이라는 나에게는 굉장히 머나먼 코스를 완주했다. 쪼잔한 폐활량과 왠지 바깥에만 나가면 옴츠라드는 반달곰 습성 때문에 밖에서는 잘 뛰지않는데 왠 발동이 걸렸는지, 나의 자신감이 뒤를 받쳐주고 또 나의 뚝심이 길을 인도해 무사히 헐떡거리면서도 11마일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숨이 꼴딱꼴딱 넘어가는 절체절명의 순간에서도, 그런생각을 문득 했었다 – 자연은 정말 크고 아름답다는, 또 나같은 인간이 자연의 운명을 거스를 수는 절대 없을 것이라고. 인간은 자연에 동화되어 사는 존재이어야 마땅하다 라고. 전날 비가와서 각종 풀냄세가 범벅이되고 말랑말랑한 진흙땅도 밟고 또 바삐 둥지를 옮겨 날아가는 새들의 소리도 몸소 체험한 귀중한 시간이었다. 육체의 강건을 위해 뛰었지만, 마음이 건강이 보너스로 좋아진 듯 했다. 무언가 뿌옇던 것을 뽀드득 닦아내린 그런 시원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내가 자연의 운명을 거스르지 말자는 일장훈계를 내 자신에게 하고있을때, 그 자신의 운명을 거스르는 요망한 것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비가오면 지렁이들과 함께 으례 반가운 손님들인 달팽이 들이었다. 뛰면서 달팽이 들을 적어도 수백마리는 본것 같은데, 숨이 모자르고 땀이 줄줄 흐르는 무아지경의 순간에도 저 달팽이를 밟아서 비명횡사를 시키지 말자는 일념이 가득찼었다. 그리고 내 신발로 물컹한 느낌이 전해지지 않은 것으로 보아 나의 대장정이 “우리동네 달팽이 무리 전멸” 이라는 대참사로 이어지지 않은 것은 참으로 다행이다.

참 재미있는 것은 아까도 말했지만, 이 달팽이군 달팽이양들 모두 사람들이 저벅저벅 걸어다니는 인도에 나와서 자기 몸을 비비적대고 있었다는 것이다. 어떤 놈들은 운동화에 밟혀 압사를 당할것이고, 어떤것들은 호기심 많은 어린이 손에 유괴되어 빈 유리병 속에서 수감생활을 할것이고, 종국에는 가로 청소차가 다니며 전부 쓸어버리고 청소기로 빨아들여 버려질 운명을 안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달팽이들은 자신이 처한 운명에 굴하지 않고 열심히 몸을 움직인다. 인간의 무관심, 호기심과 타협하지 않고, 오직 자연이라는 너무나 커다란 테두리이며 그들만의 보금자리 안에서 열심히 생태를 만들고 있는 것이었다. 자신의 운명을 거스를 지언정 꿋꿋하게, 타협하지 않고, 유혹되지 않는 삶을 달팽이 들은 살고 있는 것이었다.

달팽이 한마리도 안 밞았다고 우쭐해하던 나의 마음에, 그눔의 달팽이들이 또 꽃을 피우고 큰 가르침을 준다 – 운명을 거슬러, 담대하게, 흔들리지 않고 나아갈 수 있게, 두려움 없이, 현재(現在)에 충만한 삶이 될 수 있도록…

비온 다음날 우리동네 달팽이처럼.

나태의 불합리화

이제 정말이지 난 조금도 부지런하다거나 근면함이 배어있다는 허빵스러운 거드름은 절대로 피우지 않을것이다. 적어도 내자신의 나태함을 합리화해서 일단 맘이나 편하고 보자는 그런 삐뚜르르한 어거지 생각은 하지않을 작정이다. 하염없이 편하고 싶고, 복잡한 것과 대련하기를 꺼려하고, 뭐든지 가파르고 구불한 길보다는 평지의 어리섞음을 좇았던 나에게 당당하게 선전포고를 한 셈이지만, 사실은 이런 생각은 아마도 “난 오늘 참 게으르구나…” 라는 자각(自覺) 을 하게된 후부터 차츰 쌓이기 시작하지 않았나 싶다 (참고로 내가 스스로 게으르다고 생각한 적은 초등학교때가 처음인듯 핟…그러니까 20년을 꼼짝없이 게으름 뱅이로 살아왔으나, 그 자체를 부인하고 있었던것이다).

이렇게 게으름과 나태함으로 찌든 마음의 벽의 때를 제대로 한번 확확 후벼파보자 라는 생각을 오늘 아침 생긴 에피소드를 곁들여 얘기해보고자 한다. 오늘 아침, 왠바람이 불어서인지 알람도 딸랑딸랑 울리지 않는데 꼭두새벽부터 벌떡 일어나 깜깜한 길을 달려 체육관으로 달려갔다. 그렇게 의욕이 앞서 가긴했지만 눈꼽 떼는데 10분, 물마시는데 5분, 스트레칭 10분 등등 그렇게 어영부영 시간을 떼우고 있었다. 새벽에 나를 잡아 일으킨 의욕의 내음은 멀리멀리 도망가 버리고, 아 30분만 더 잘 수 있었는데…몽상을 거듭하다 희한한 광경을 보았다. 내 앞으로 다리가 불편해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그러나 눈빛은 나의 그것보다 천배는 초롱초롱한 한사람이 열심히 바퀴질을 하며 운동 준비를 하고 있었다. 도움도 받지않고 남의 눈을 전혀 의식하지 않으며 오직 심신의 건강을 위해 역기도 들고, 아령도 들었다 놨다 했다. 과연 그때 난 이런 생각을 했다 – “저 사람은 도대체 어디서 저런 자신감이 나는걸까? 몸도 불편한데도 뿜어 나오는 힘의 원천은 어디일까?”

트레드밀에서 땀을 뻘뻘흘려 뛰면서도 생각을 거듭했다. 그 사람은 참으로 신기했고 (참으로 불편한 몸으로 역기를 번쩍번쩍 드는게 믿어지지 않았다…), 모든 사람앞에서 당당했고, 나와는 달리 부지런함이 주는 미덕을 간파한 듯 싶었고, 또…또, 자기 자신을, 그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믿어주는듯 싶었다. 자기자신을 굳게 믿기에 운동도 하고, 새벽잠과 타협해서 체육관에도 불편한 몸을 끌고 왕래하고, 또 자기자신을 믿기에, “장애인” 이라는 불편한 꼬리표를 달고 다님에도 그리도 당당한게 아닐까 싶었다. 그사람은 적어도 자신의 나태를 합리화 시키는 나같은 속물과는 차원이 다른듯 싶었다. 당당했고, 자신감이 넘쳤고, 빛이났고, 그리고 열심히 사는사람에게서 나는 향기가 났다, 정말로.

내자신을 자책하는 성격은 결코 아니지만 이번에는 정말 더 열심히 더 당당히, 더 자신감있게 살아봐야 겠다는 생각이 그 언제보다도 강하게 용솟음 쳤다. 아침에 일어나기 싫어 양치질도 이불속에서 빈둥빈둥 하는 내가 아닌, 나를 믿으니까, 사랑하니까 힘차게 하루를 맞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생각했다. 나태함을 합리화 시키는 무지몽매가 아니라, 나태함의 뿌리를 근본적으로 뽑아버릴 수 있는 그런 멋진 사람으로 거듭나야겠다 생각했다. 단 한번이라도 참으로 빛이나고, 참으로 향기나는 인간으로 살아가기를 갈구해야겠다 생각했다. 눈꼽을 부비며 꼭두새벽에 여길 왜왔나 라는 회의마저 들었던 체육관을, 땀과 함께 범벅이 되긴했지만, 얼마정도 나름대로 깨끗히 여과된 마음가짐을 갖고 나가니 발걸음도 가벼웠다. 

생뚱맞지만 내일 아침은 알람시계의 철퍼덕 의존하지 않는 아침을 맞을 수있다는 자신감을 가져본다. 그래도 모르니 살짝 알람이 잘 작동되고 있나 점검은 해봐야겠다. 

Wednesday, December 2, 2009

동안(童顔) 사랑

동안(童顔) 사랑

얼마전 무료하기 그지없던 느림보 오후시간을 떼우려고 인터넷 신문을 죽 훑어보다가 왠 기사가 나서 읽어보니 서울 어디어디서 동안 선발대회가 열렸는데 아무개가 실제나이는 마흔을 넘긴 불혹의 나이였건만 중학교 학생인 자기딸과 나가면 친구인줄 안다며 도중에 배시시 웃는 여자의 인터뷰를 꽤 공들여 쓴, 각종 기상천외한 피부관리법을 첨부하고 묘한 호기심을 긁어 써제낀 기사였다. 주름이 질까봐 평생 웃지도 않아서 동네 아줌마 한테 왕따를 당한다는 아줌마 부터, 새벽에 일어나자 마자 기지개도 키기 전에 미지근하게 데운물을 2리터나 들이 퍼 마시는 도자기 인형마냥 피부가 곱디고운 할머님 까지, 웃자고 읽은 기사였지만 참 젊게 보이려고 사람들이 용쓴다 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이 나이에 맞게 살아야지 무슨 얼굴 뜯어먹고 살일 있나 라는 철학순리적인 빈정도 곁들여서.

근데 문제는 나의 이런 생각들이 참 모순 됐다는 거다. 뭐 나이를 반으로 팍 줄여서 보이고 싶은 어리섞은 욕심은 없지만서도 서른의 문턱에서 엥간히 발버둥치는 요즘에는 부쩍 피부관리의 할 수 없는 중요성과 지대한 관심을 보여온 나다. 화장품은 물론 가끔 평수마저 시원하게 넓은 얼굴에 팩도 더덕더덕 붙이고, 우유 한병 턱 하니 사다 놓고 밤마다 조금씩 데워서 얼굴에 토닥 거리기도 한다. 참, 이런얘기를 굳이 철판을 깔고 하는 이유는 뭐, 나도 어쩔 수 없고, 동안대회에 나온 사람들을 혀 끌끌차며 비아냥 거리기 전에 나도 속물스럽게 쓴돈 다쓰고 시간들일거 다 들여가며 동안에 대한 갈구를 남 못지않게 했다는 것이다.

평소에도 로션도 좀 바르고 관리도 좀 했지만 이렇게겉 잡을 수 없이 동안스럽게 보이고 싶은 욕망의 원천은 지난 3월에 다녀온 한국에서 비롯됐다고도 할 수 있다. 가서 얼마 되지않아 큰삼촌 댁에 가족모임이 있어 갔는데, 아주 오랫만에 봐서 즐거웠었던 사촌 형, 누나들이 주루룩 있었다. 그 누나, 형들은 “많이 어른스러워 졌다” “미국물을 먹더니 키가 커졌다” “영어 잘해서 부럽다” 기타 등등의 듣기 좋은 사탕발림 말들도 했지만 특히 나의 심금을 울린 칭찬은 “너 되게 동안 이다” 라는 거였다. 나이보다 늙게는 안보인다는 자만심과, 여태까지 들어간 화장품과 시간이 얼만데 피부가 안좋을 수 없다는 뚝심은 예전부터 가지고 있었지만 “동안이다!” 라는 황공무지한 멘트를 들으니 과연 나는 그 순관 솜털이 되어 날아갈것만 같았다. 또 내가 평소에 눈엣가시 처럼 생각했던 사촌누나가 내 피부를 뽀드득 만져보며 “너 사람들이 대학생으로 보지않니?” 라고 해서 체면도 불구하고, 앙숙이었던 옛날기억 다 훌훌 털어버리고 허그라도 그냥 하고 싶은 맘이었다.

그렇게 나도 어리게 보인다는 다부진 자신감에 흠뻑 취해서 다음날 지인들을 몇명 만나러 갔던 나는 참으로 상반된 경험을 하게 되었다. 저녁식사가 끝나고 맥주한잔 하자는데 의기투합해 근처 호프집으로 들어간 우리. 마른오징어, 골뱅이 안주에 흉흉한 정세(政世) 까지 안주로 삼아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지인의 여자친구가 근처였다며 쪼르르 우리테이블로 와 앉았다. 용모도 단정하고 참 괜찮은 여자친구를 두었구나, 똑똑하고 이쁘니까 최고 신부감이네 하며 마음속의 그림을 그리던 나는 순간 그분이 던진 한마디에 아연 실색 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아 앞에 앉으신분 (바로 나였다…)은 나이가 좀 연배가 위신가봐요, 나이가 좀 지긋하신 거 같은데요?”

!!!!!!!!!!!!!!!!!!!!!!!!!!!!!!!!!!!!!!!!!!!!!

순간 내 심장은 한겨울 백두산 천지 얼어붙듯 얼어버렸고, 내 눈은 무슨 동해삼척 명태눈깔 같이 둥그래졌으며, 그때까지 동안이라는 말을 듣고 좋아서 온몸을 순환하던 내피는 갑자기 마구 거꾸로 역류했다. 아니 검증된 동안을 늙다리 선배로 치부하다니. 여자고 뭐고 한판 붙고싶은 찰라에 친구 (그 여자친구의 남자친구) 왈 “제 원래 되게 어려보이는데 오늘 양복 윗도리를 입고 머리고 길어서 좀 나이 들어보이나봐…하하하” 맥주한잔 들어가니 기분좋았던 얼굴이 팍 숨죽은 우거지상이 됐으니 뭔가 간파를 하고 눈치껏 날리 멘트였고, 또 나도 다혈질 답지않게 그냥 흐지부지 지나가게 나뒀기 때문에 그냥 잘 마무리가 되었지만, 나는 하루사이에 “최강동안” 싱글남에서 “팍 삮은 친구들의 선배” 로 추락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 순간 굳게 다짐했다. 불굴의 의지와 투자와 노력으로 피부를 업그레이드 시키겠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딱하지 않았나 싶다. 아무리 얼굴에 금칠 우윳칠을 한다고 해도 가는세월을 뜯어 말릴 수 없고, 자연의 섭리인 노화 현상을 막을 수 없고, 내 자신이 격상 되는 것도 아닌데 왜 동안이라는 말에 하늘을 날고, 나이들었다는 말에 지옥을 기어다녔을까?

그냥 나답게 살면 되지, 이제까지 내얼굴보고 구토 발열 증세를 보인 사람은 없으니 그냥 이 정도면 되지않을까. 뭘더 바라나 싶다. 한살 두살 더먹어도 뱃심 두둑하게, 자신있게 몸과 마음을 가꾸어 나가면 그것보다 더 좋은게 어디있을까. 동안소리 안들어도 좋으니 내맘 편한대로 사는게 좋지 않나 싶다.

그런 내 마음가짐을 시험하듯 이 글을 맺기 바로전에 친누나 한테서 띠리리 전화가 온다 “야 너 피부관리 열심히해, 그래야 장가가지!”

Sunday, October 11, 2009

가을, 그 참을 수 없는 오묘함

“젤로 좋아하는 계절이 뭐야?”

음, 봄은 만물이 생동해서 좋고, 색감이 살아있는 자연이 좋고, 따뜻해서 좋고, 새로시작하는 적잖은 설렘이 있어서좋아. 여름은 청록의 담대함이 부럽고, 후더분하고 찌는듯함 속에서 오는 강렬함이 부럽고, 정점에 다다른 듯한 기분이 부럽고, 식경을 즐길수 있는 산세가있는것이 부럽고… 겨울은 모든것이 하이얄 수 있는 자체가 신기하고, 이제 이파리도 없이 과실도 없이 있는 가지들이 휘황한 만개의 순간을 기다리며 앙상한 자태로 겸손하게 있을 수 있는것이 신기하고, 성탄이나 구정같은 발발떨며 추운계절에도 훈훈한 명절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만해.

그럼 봄도 좋고, 여름도 부럽고, 겨울도 신기하면…가을은?

가을은?

머나먼 이곳에 짐가방 싸들고 쭐레쭐레 이사올때 까지만해도 가을은 그냥 단풍이 좋은계절, 여름과 겨울사이에 있는 필연의 시간이었다. 혼자 곱씹을 수 있는 시간이 더 많이 용이해서 그럴까? 예전에 느끼지 아니 하였던 가을이란 친구를 지금 새삼 느끼고 느낀다. 낙엽이 휘뒹구는, 제법 찬바람이 겨울의 전초전을 알리는 가을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 진작에 옆에 있었거늘, 오래전 부터 여름후에, 겨울전에 나를 들썩안고 단풍구경 시켜주고 단물오른 사과와 배를 맛보게 하여 주었지만, 그런 귀한 친구를 난 지금에서야 절실해 지는 것이 부끄럽기만 하다.

지금까지 해보지 쏟지 못했떤 나의 자연에의 애정을 지금이나마 만회하고자 오늘은 오렌지색 갈색 쿠션깔개 사다갈고 할로윈이다 뭐다해서 사탕도 사고, 추수 분위기 엄청내려 호박 옥수수 동여맨 장식품도 몇개 끄적거려 보았다. 바작거리는 낙엽도 보고, 수줍은 달도 보고 추수감사도 드리지는 아직 못하였다. 가을친구가 이리도 나를 분주하게 할줄 알았으면 여름을 좀 짧게 끝내는 것인데…

조신하며 인내하는 가을, 기다림의 극치를 보여주는 계절, 곡식이 여물고 과실이 단내 풀풀 풍기는 축제의 향연안에서도 겨울을 준비하라 엄히 꾸짖는, 그렇지만 더운 날씨 끝났으니 시원한 바람쐬면서 오감(五感) 을 충족 시키라는 배려심 많은 이 시간이 어찌 좋지 아니한가? 잘 수확된사과 한입 배어물고, 농익은 단풍보며, 담담히 하절(夏絶) 을 보내고 수줍으나 설레임 가득하게 동절(冬絶) 을 부둥켜 않을 준비를 하는 계절을 어찌 사랑할 수 없을까?

“젤로 좋아하는 계절이 뭐야?”

가을이라 가슴펴고 말할 수 있을듯하다. 모든계절이 오묘하나, 가을을 따라갈 계절 없노라며 자신있게 표방할 수 있을듯하다.

Tuesday, October 6, 2009

진실이 누나, 벌써 일년이 되었나요?



정말 이 세상에 같이 있는듯하다. 언제 은막에서 화려한 복귀를 하려나...바보같은 상념만 가득하다.

그립습니다.

Wednesday, September 23, 2009

아침부터 그리운 그대

아침부터 그리운 그대

“아침 부터 그리운 그대” 라는 제목을 단 꽤 유명한 시낭송집이 내가 중학교를 들어갈 즈음에 나와 불티나게 팔렸다. 마음을 살랑살랑 구슬리는 시만 엄선했을 뿐만아니라 그 시귀들을 당대 톱스타였던 채시라가 낭송을 했으니 이루 말할 것도 없는 “대박” 이었다. 이런 대박문귀를 내가 철면을 깔고 이 야심한 밤에 떡~하니 사용하고자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 제목이 지금 나와 나의 나라의 대한 관계(?) 를 정말 한치 틀림도 없이 정확이 묘사하고 있음이다.

한국은 요 몇년들어 굉장히 자주간다. 2009년에도 봄들어 꽃샘추위 끝자락에 한번 다녀오고, 이번에도 아직 설익을 가을날씨를 맞이하러 한번 더 다녀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여기가 한국이 아닐까, 아직도 밖에 나가면 공기처럼 둥둥 떠다니는 친숙한 한국말의 단어들이 내귀를 에워싸지 않을까, 하는 몽상이 가득가득하다. 내일은 어떤친구한테 문자를 보내 꼬드겨 술자리를 만들까, 또는 내일 어느 어느 길이 막히는데 거길피해 다닐까 등등 굉장히 소소한, 그러나 지극히 한국적인 생각을 하게된다. 돌아온지 아직 이틀도 채 되지 않았는데 다시금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이유는 무엇이런지, 그것이 참으로 궁금하다.

시간앞에서는 굉장히 무 자르듯 단호한 사람이 나라고 자부했는데, 지금 이 순간에도 느끼지만, 과연 고국의 향수가 뒤범벅대면 정신 못차리고 지나간 시간에 연연하는, 과거의 끈을 붙잡고 우둔해지려 한다. 그러면 안되지, 현실을 직시하고, 여기는 내가 한국만큼 사랑하는 미국이지, 물좋고 공기좋은 미국이지 하다가도 금방 와르르 무너져 버린다.

그러나, 온자리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음을, 그런 회귀(回歸) 적인 시간의 매력을 나는 굳게 믿으므로, 하루빨리 일상에서 벗어나 내가 사랑하는 곳에가서 잠시나마 다시 띵까띵까 할 수 있을것으로 확신한다. 그러려면 하루하루 생활의 수순을 잘 밟아서, 그곳까지 잘 다다를 수 있도록 해야하는 것이다. 아침부터 그리운 고국에 대한 추억을 지표로 삼아 그길을 잘 걸어가서 다시금 정점에 도달할 수 있도록, 나의 추억을 생생하게 되짚을 수 있는 그 정점으로 말이다. 고국에서 보냈던 시간들이 파릇파릇한 활력소가 되는 아름다운 순간이다, 지금. 아침부터 그리운 그대가 있어 가능하다.